시내암(施耐庵)


작가 시내암(施耐庵 1296?~1370?)

이름은 자안(子安) 또는 명이(名耳)이고 자(字)는 내암이다.
중국 장쑤성[江蘇省] 화이안[淮安]에서 태어났다. (전당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.)
<수호지>의 작가로 추정되고 있으며 <삼수평요전(三遂平妖傳)>, <지여(志餘)>등을 지었다고 한다.

원나라 지순(至順) 연간인 35세에 진사(進士)가 되어 전당에서 2년간 관직에 있었지만 윗사람에게 결탁할줄 몰라 관직을 버리고 쑤저우[蘇州]에 칩거하여 문학창작에 전념했다고 전해진다.

원나라 말기에 장사성(張士城)의 난(1321-1367)에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, 이 때의 봉기에 참여하며 겪고 느낀 바를 통해 전해 내려오던 민담. 설화 등을 엮어 <수호지>를 집필했다고 한다.

그러나 실은 그가 봉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.

한때, 시내암의 명성을 흠모하던 장사성이 관직을 맡기려 했으나, 수차 거절했다고 한다.
후에 장사성이 왕이 된 후에 다시 찾아갔을때, 시내암이 수호지의 초본인 <강호호객전(江湖豪客傳)>을 쓰고 있던 참이라 간곡히 사양했는데, 결국 장사성은 주원장의 명에 의해 소멸되었다.
<수호지>는 시내암이 민간에 전해내려져온 기초 위에 자신의 주제의식과 문학적 재미를 가하여 재창작을 한 것이다.


시내암이 살던 집이라고 한다.

국내의 전래와 영향

조선에서 <수호지>는 중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전파되었다.유독 우리나라에서만 <수호지>로 불리는 것은 18세기에 번역 필사본 <튱의 수호지>가 나온 이후인 듯 하다. 조선조 반역적인 작가였던 허균(許筠:1569~1618)이 <수호지>의 영향을 받고 <홍길동전>을 지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미... » 내용보기

수호지의 판본

판본문제는 상당히 복잡하여 조본(祖本:原本), 번본(繁本:事繁本), 간본(簡本:文簡本)의 구별이 있다.조본은 명의 고유(高儒)가 <백천서지(百川書志)>에서 시내암 본+나관중 편차라고 한 <충의수호전일백권>을 가리킨다.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. 그 뒤 1522~1566년 사이에 간행되었다는 '곽훈(郭勛)각본' 역시 전하지... » 내용보기

수호지의 예술성

<수호지>의 주제는 기본적으로 관리들의 핍박에 못이겨 민중이 반란의 길에 나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. 고구, 채경, 동관, 양전 등의 봉건통치계층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하며 간악스러운가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는가 하면, 송강, 이규, 노지심, 무송, 완씨삼형제 등 농민과 일부 의리를 중시하는 지주계급의 진보적 분자를 포함한 피압박계층의 민중들을... » 내용보기

수호지의 사실성

<삼국지연의>가 70퍼센트의 사실과 30퍼센트의 허구로 이루어졌다면 이 소설은 5퍼센트의 사실과 95퍼센트의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할수 있다.송강(宋江)의 봉기에 대해서는 <송사(宋史)>나 <동도사략(東都史略)> 등에 단편적인 기록들이 전해진다. 이에 의하면 그는 36인의 무리를 이끌고 산동, 하남 일대를 횡행하였는... » 내용보기